커피 한 잔의 여유가 떠올려준 것들 —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이유

창가 책상에서 커피와 함께 노트에 글을 쓰는 모습

시간과 비용의 여유가 생겼다. 예전 같으면 담배를 사러 나가거나 흡연 시간을 채우는 데 썼을 그 자투리 시간들이, 어느새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시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엔 그냥 커피가 좋아서 시작한 취미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취미가 나에게 준 건 단순히 맛있는 커피 한 잔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원두를 고르고, 물 온도를 맞추고, 천천히 드립을 내리는 그 과정은 나에게 취미 그 이상이었다.

물이 원두 위로 천천히 스며들며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몇 분이,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 되었다.

스마트폰도 잠시 내려놓고, 해야 할 일 목록도 잠시 잊고, 그저 눈앞의 작은 과정에만 집중하는 시간.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 시간 동안 조급함 없이 온전히 내 생각과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도 나는 잠깐씩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시간은 뭔가를 채우기보다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에 가까웠다.

반면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조금 달랐다. 손을 움직이고, 향을 맡고, 온도를 느끼는 그 감각적인 과정이 오히려 머릿속을 더 맑게 만들어줬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이 작은 루틴이 나에게 알려준 게 하나 있다.

사람은 몸이 바쁘면 생각도 함께 바빠진다는 것. 그리고 몸이 잠시 멈추면, 그동안 뒤로 밀려나 있던 생각들이 비로소 앞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몰랐던 이 단순한 사실을,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몇 분의 시간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됐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습관이 생겼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담배 대신 커피, 나쁜 습관 대신 좋은 습관 정도의 단순한 교환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변화는 단순한 습관의 교체 이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몸에 여유가 생기니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고, 그 여유는 결국 내가 오랫동안 미뤄뒀던 질문들과 마주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가”라는, 평소라면 떠올리지도 않았을 질문이었다.

여유가 있는 시간이 불러온 생각

창가에서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긴 모습

바쁘게 지내던 시절에는 미뤄두었던 것들,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던 것들이 있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런 것들이 하나둘 떠오르곤 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지금 당장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계속 뒤로 미뤄왔던 마음들이었다. 그중 가장 크게 다가온 건 가족에 대한 생각이었다.

다른 가족들도 있지만 특히 나에겐 신경이 쓰이는 두 사람이 있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24세 남성 가족,

그리고 당뇨병과 초기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이는 70대 여성 가족.

각자 다른 어려움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두 사람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늘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바쁜 일상 속에서는 그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오늘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넘기다 보면 마음속 어딘가에 있던 다짐은 점점 흐려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언젠가는 뭐라도 해야지”라는 생각만 반복하면서, 정작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연 이후 생긴 여유가 그 흐려졌던 마음을 다시 선명하게 만들어줬다.

커피를 내리며 가만히 앉아 있던 어느 날, 문득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함께 보냈던 시간들, 나누었던 대화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꼈던 안타까움과 애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사소한 순간들도 함께 떠올랐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반복해서 설명해줘야 했던 순간들, 같은 상황이 낯설게 느껴질 때마다 옆에서 차분히 짚어줘야 했던 기억들. 그런 순간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여유를 가지고 다시 마주하게 됐고, 이번엔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해야겠다.” 그 생각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거창한 결심이라기보다는, 아주 소박한 다짐에 가까웠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더라도, 일단 시작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생각을 넘어 행동으로

알고 있던 것을 실제로 극복해보기로 했다.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떤 방식이 효과적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기보다는, 일단 작게라도 움직여보기로 했다.

유튜브의 먹방 콘텐츠만 볼줄아는 남성에게 다른 세상을 조금 더 알 수 있게 할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시작한 게 웹툰 시리즈다.

검은 곰 ‘도리’가 주인공이고, 곁에는 보호자 고양이 ‘모모’, 친구 골든 리트리버 ‘뭉치’, 선생님 여우 ‘하나쌤’이 함께한다.

매 화는 하나의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마지막엔 도리가 스스로 이해하는 순간으로 마무리된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 물건을 살 때 가격표를 확인하는 것처럼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을, 가르치듯이가 아니라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전하고 싶었다.

캐릭터를 정할 때도 고민이 많았다. 너무 사실적이면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질 것 같았고, 너무 유아적이면 24세라는 나이대와는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부드럽고 친근하면서도 담백한 느낌의 동물 캐릭터를 선택했다. 도리는 검은 곰이지만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조금 서툴고 순한 인상을 갖도록 그렸다.

모모, 뭉치, 하나쌤도 각자의 역할에 맞게 성격과 표정을 조금씩 다듬어가고 있다.

이야기의 구조도 여러 번 고쳤다. 처음에는 정보 전달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야기가 딱딱하게 느껴졌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도리가 스스로 이해하는 순간으로 마무리하는 지금의 틀을 잡게 됐다.

이 틀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콘텐츠를 만들어가면서 계속 변해지고 다듬어질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막상 첫걸음을 떼고 나니, 왜 진작 시작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함께 찾아왔다. 무언가를 미루는 이유는 결국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때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일단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기로 했다. 당뇨환자를 위한 식단과 건강 상식,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인지 프로그램도 함께 만들어보기로 했다.

각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 가족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콘텐츠의 방향도 두 갈래로 넓어졌다. 하나는 이야기로 배우는 발달장애인 교육 웹툰, 다른 하나는 일상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건강 정보. 겉으로는

다른 주제 같지만, 결국 둘 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작된 일이라는 점에서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당뇨 식단은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것보다, 실제로 가족과 함께 준비해볼 수 있는 음식 위주로 정리해보려 한다. 이론적인 조언보다 직접 겪은 시행착오가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 증상을 지연 시킬 수 있는 인지 프로그램 역시 전문 자료를 참고하되, 실제로 함께 해보면서 반응이 좋았던 활동들을 중심으로 기록해나갈 계획이다. 두 가지 모두 전문가의 완벽한 지침 이라기보다는, 같은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될 수 있는 실전 기록에 가까울 것 같다.

배우면서 만들고, 만들면서 또 배우고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새로운 배움의 연속이다.

대본을 쓰는 법, 캐릭터의 표정 하나로 감정을 전달하는 법, 식단과 인지 프로그램을 자료로 정리하는 법, 이미지 생성 도구를 다루는 법, 워드프레스에 콘텐츠를 올리고 정리하는 법까지 — 하나씩 부딪히며 익히고 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툰 부분도 많지만, 그 서투름조차 이 여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특히 처음 웹툰 대본을 쓰려고 했을 때는 막막함이 컸다.

어떻게 하면 정보를 딱딱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야 했다.

몇 번이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원하는 분위기와 캐릭터의 느낌을 말로 설명하는 것부터가 새로운 훈련이었다.

처음에는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말로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워드프레스를 다루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글을 올리는 것부터, 카테고리를 나누는 것, 이미지를 삽입하는 것까지 하나하나가 새로운 배움이었다.

처음에는 버튼 하나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하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이런 작은 성취들이 쌓이면서, 콘텐츠를 만드는 일 자체에 대한 자신감도 함께 자라나고 있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는 앞으로 이런 흐름들이 함께 담길 예정이다.

  • 웹툰 제작기: 도리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한 화씩 올라간다.
  • 건강 정보: 당뇨 식단과 관리법, 알츠하이머 인지 프로그램 등을 정리한다.
  • 배움 기록: 콘텐츠를 만들며 익힌 도구와 방법들을 남긴다. 나처럼 새로운 걸 배워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이 세 가지 흐름은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마음에서 출발했다.

가까운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도 계속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처음에는 이 세 가지를 한 공간에 담아도 될지 고민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나라는 사람의 하루하루를 이루는 조각들이라는 생각에 그대로 함께 담아보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시작은 담배를 끊은 것이었고, 그 다음은 커피 한 잔의 여유였다. 그 여유가 잊고 있던 마음을 다시 떠올려주었고, 이제는 그 마음을 가족을 비롯한 누군가에게 더 나은 환경으로 돌려주고 싶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작은 습관 하나가 이렇게 멀리까지 이어질 줄은 나도 몰랐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그 과정을 천천히, 꾸준히 나눠보려 한다.

완벽하게 잘하는 모습보다는,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다. 서툴더라도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이야기와 정보를 전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기록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에게 커피 한 잔이 그랬던 것처럼,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잠시 멈춰 생각할 수 있는 작은 여유가 되기를 바란다.

이 블로그를 시작하며 다짐한 것

글을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나 스스로에게 몇 가지 약속을 했다.

첫째,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 발달장애나 알츠하이머, 당뇨 같은 주제는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부분은 관련 자료나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하고, 내가 직접 경험한 부분은 경험한 만큼만 솔직하게 적으려 한다.

둘째,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글 하나, 웹툰 한 화를 완성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빨리 많이 만드는 것보다, 하나를 만들더라도 진심을 담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셋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룰 때는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로 했다. 두 사람의 삶을 소재로 삼는 만큼, 사생활을 존중하는 선을 지키면서도 진솔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해나갈 생각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다짐들이 앞으로 이 블로그를 채워나가는 동안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커피 한 잔의 여유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가, 앞으로 얼마나 더 멀리 이어질지는 나도 아직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여정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걸어가 보려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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