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연을 하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시간과 비용의 여유였다. 예전 같으면 담배를 사러 나가거나 흡연 시간을 채우는 데 썼을 그 자투리 시간들이, 어느새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시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원두를 고르고, 물 온도를 맞추고, 천천히 드립을 내리는 그 과정은 나에게 취미 그 이상이었다. 물이 원두 위로 천천히 스며들며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몇 분이,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 시간 동안 조급함 없이 온전히 내 생각과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유가 있는 시간이 불러온 생각
바쁘게 지내던 시절에는 미뤄두었던 것들,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던 것들이 있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런 것들이 하나둘 떠오르곤 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지금 당장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계속 뒤로 미뤄왔던 마음들이었다. 그중 가장 크게 다가온 건 가족에 대한 생각이었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24세 남성 가족, 그리고 당뇨병과 초기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이는 70대 여성 가족.
나에겐 이 두 사람이 있다.
각자 다른 어려움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두 사람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늘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바쁜 일상 속에서는 그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다.
여유를 가지고 다시 마주하게 됐고, 이번엔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해야겠다.” 그 생각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생각을 넘어 행동으로

알고 있던 것을 실제로 극복해보기로 했다.
가족뿐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웹툰 시리즈다. 검은 곰 ‘도리’가 주인공이고, 곁에는 보호자 고양이 ‘모모’, 친구 골든 리트리버 ‘뭉치’, 선생님 여우 ‘하나쌤’이 함께한다. 매 화는 하나의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그 행동을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를 비교해 보여주고, 마지막엔 도리가 스스로 이해하는 순간으로 마무리된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 물건을 살 때 가격표를 확인하는 것처럼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을, 가르치듯이가 아니라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기로 했다. 당뇨환자를 위한 식단과 건강 상식,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인지 프로그램도 함께 만들어보기로 했다. 각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 가족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콘텐츠의 방향도 두 갈래로 넓어졌다. 하나는 이야기로 배우는 발달장애인 교육 웹툰, 다른 하나는 일상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건강 정보. 겉으로는 다른 주제 같지만, 결국 둘 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작된 일이라는 점에서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배우면서 만들고, 만들면서 또 배우고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새로운 배움의 연속이다.
대본을 쓰는 법, 캐릭터의 표정 하나로 감정을 전달하는 법, 식단과 인지 프로그램을 자료로 정리하는 법, 이미지 생성 도구를 다루는 법, 워드프레스에 콘텐츠를 올리고 정리하는 법까지 — 하나씩 부딪히며 익히고 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툰 부분도 많지만, 그 서투름조차 이 여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는 앞으로 이런 흐름들이 함께 담길 예정이다.
- 웹툰 제작기: 도리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한 화씩 올라간다.
- 건강 정보: 당뇨 식단과 관리법, 알츠하이머 인지 프로그램 등을 정리한다.
- 배움 기록: 콘텐츠를 만들며 익힌 도구와 방법들을 남긴다. 나처럼 새로운 걸 배워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돌이켜보면 시작은 담배를 끊은 것이었고, 그다음은 커피 한 잔의 여유였다. 그 여유가 잊고 있던 마음을 다시 떠올려주었고, 이제는 그 마음을 가족을 비롯한 누군가에게 더 나은 환경으로 돌려주고 싶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작은 습관 하나가 이렇게 멀리까지 이어질 줄은 나도 몰랐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그 과정을 천천히, 꾸준히 나눠보려 한다.